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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4.27.

alexis_2026 2020. 4. 27. 01:35
...불교도인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의 공론화에 불을 붙이긴 했지만, 건국 이래 약 60여 년 동안 1만여 명의 신도를 감옥에 보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해 온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자신들의 입장이나 고초를 사회와 여론에 호소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언론도 이 소수 종파의 입장을 공론화해 주겠다고 나설 까닭이 없었다. 그러던 2000년, 유명한 성우 양지운 씨가 아들을 감옥으로 보낸 탓에 가까스로 <한겨레신문> 등에 그들의 실상이 알려졌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물론 소수 의견이겠지만, 거대 개신교 측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애원하는 대체 복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50년대 이후 매해 신도들을 감옥으로 보내면서 사이비로 지탄을 받아야 했던 여호화의 증인들의 고난에 반해, 한번도 살상 거부를 위한 종교적 정언 명령을 고민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 '대체 복무는 여호화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라는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극우반공체제를 잠시 밀쳐 두고 보면, 같은 종교 구성원 속에서도 계급(신분)적 불평등이 흉하게 노출된다. 교리로 살생을 금하는 불교는 물론이고 개신교나 천주교 할 것 없이, 모든 종교는 증오를 버리고 마음의 평화와 이웃 사랑을 나누도록 명한다. 그러므로 '살인을 하지 말라'는 종교적 정언 명령은 어떤 종파의 신도이든 평등하게 누려야 하되, 승려, 목사, 신부와 같은 성직자 신분과 평신도의 운명은 다르다. 다시 말해 성직자는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군승이나 군목(군사제)이 될 수 있으나, 평신도는 평신도라는 이유만으로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진다. 성직이라는 위치 때문에 자신이 생명을 걸고 추구하거나 고민조차 해 보지 않았던 '살생 불가'라는 종교적 계율을 훼손시키지 않아도 좋았던 성직자가, 평신도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고 지원해 주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2006,7년경 한 활동가에 선물받은 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된 책이었구나. '문명은 충돌하는 게 아니라 교호한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교호'라는 단어에 교호호흡을 며칠동안 하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미얀마와 우리나라에서의 여러 경험과 관련된 상념들이 밀려온다. 그만하고 자야겠다. 

 

조성진의 무관중 피아노 리사이틀. 

코로나19 덕분에 여러 공연들을 방안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벌써 4월의 끝자락이다. 

모든 존재가 담마 안에서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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