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3.17-22. 본문

2020

3.17-22.

alexis_2026 2020. 3. 23. 13:54

많은 뉴스들이 쏟아진 한 주였다. 한 차례의 연장 끝에 구조특강을 완강하였지만 한숨 돌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 몇 편을 보았다. 시야가 트인곳에 가고 싶지만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조금 기다리기로 한다. 양평 구하우스나 뮤지엄 산에 가고 싶다.

 

ebs 다큐프라임 히말라야 

해야할 것만 같았던 일도, 하고 싶었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은 것이 확실하다.

 

달라이 라마의 지혜명상/ 툽뗀 진빠 편역/ 최로덴 옮김/ 모과나무(2020)

pp.189-191
단계적인 접근

...하지만 마음은 다릅니다. 다음 생까지 이어집니다. 마음에 바탕을 둔 자질이 더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심도 마음에 습을 들여야 더 오래갑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자비심의 속성을 기르고 공성을 깨닫는 지혜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자비에 익숙해짐으로써 깨달음을 위한 고도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특정한 경계(臨界)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자체적으로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이 경계에 이르면 마음이 지속되는 한은 이와 같은 자질이 끝없이 개발됩니다.
 신체적인 운동은 쉬었다가 다시 원래의 기술 수준을 회복하려면 그 전체의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하지만, 마음의 자질은 일단 자체적으로 작동하는 수준까지 개발되면 오랫동안 방치해도 조금만 집중하면 곧바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됩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다른 이유는 그 둘의 기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개발하는 일은 생을 이어가면서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번 생에 충분한 진전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 자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래의 어느 한때 다시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비심을 무한히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성을 함께 깨달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이 혼돈과 무지와 불확실성으로 가득할 때는 잠시 스쳐가는 고통도 너무나 크고 아프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우리의 마음이 통찰의 지혜로 충만한 때는 엄청난 시련의 고통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공성의 지혜를 충분히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공성의 교법을 약설한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과 같은 경론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수행 전통이긴 하지만 지혜의 눈 혹은 법의 눈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만한 수행의 과정이 떠오른다, 주의를 기울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 그리고 따라오는 생각과 감정은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한 일이 없다는 것과 후회와 분노이다. 피트니스도 못가고 있어서 예민해진 탓이다...

 

프라도 미술관의 작품을 떠올린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클라우드에서 사진 폴더를 열어보니 프라도 미술관에 간 날의 사진이 한 장 밖에 없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더 있겠지. 포르투도 섬세함이 남아있는 도시였다. 항상 아쉬운 것은 일정이다. 

 

이제 정식으로 개강이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편하고 좋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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